멜버른과 멕시코시티, 애틀랜타에 이어 로스앤젤레스까지 올림픽 소프트볼의 역사
19/10/2023 1 분 읽기

멜버른과 멕시코시티, 애틀랜타에 이어 로스앤젤레스까지 올림픽 소프트볼의 역사

1965년 개최된 제 1회 WBSC 여자 및 남자 소프트볼 월드컵에 이어 1966년 멕시코시티에서 올림픽 소프트볼의 꿈이 시작됐으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등장 한 이 후 4차례나 올림픽 종목으로 등장한 소프트볼이 2028 LA 올림픽에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10월 16일,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제 141회 IOC 총회에서 야구/소프트볼 종목을 포함한 5개 종목에 대한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추가 종목이 결정됐고,

이와 같은 소식에 전 세계 선수들과 팬, 관계자들이 크게 기뻐하며 함께 축하했으며, 올림픽 소프트볼의 역사에 대해 되돌아 보았다.

Beijing_2008_softball_full_house

1965년 여름,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된 여자 월드컵에 이어 멕시코 시티에서 남자 월드컵을 계획하는 등 유럽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소프트볼의 올림픽 종목 포함을 주장했던 국제소프트볼연맹(ISF) 사무총장 고(故) 돈 포터(Don Porter)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편지를 보냈고,

이에 당시 IOC 사무총장 Lydia Zanchi가 “최소 25개국 이상에서 널리 시행되는 스포츠가 아니라면 올림픽 종목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답했다.

1968년, 올림픽 시범 종목 채택에 실패한 뒤 멕시코 시티로 날아간 포터 사무총장은  Avery Brundage  IOC 위원장과 15분 동안의 미팅 기회를 얻었으며,

2018년, Brundage 전 IOC 위원장과의 당시 만남을 회상한 포터 전 ISF 사무총장은 “그는 키가 굉장히 컸습니다. 소프트볼의 올림픽 종목 채택에 대해 그에게 말했고, 그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언제가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던 Brundage 전 IOC 위원장. ISF는 마침내 1977년 제 79차 IOC 총회에서 드디어 인정받게 됐지만 몬트리올 올림픽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탓에 1980년 대회를 포기하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집중하기로 했다.

9개 후보 종목으로 채택된 소프트볼은 또 다른 후보였던 야구의 로버트스미스 국제야구협회 회장과 협력하여 Juan Antonio IOC 위원장을 만나 공동 후보를 제안했다.

Juan Antonio Samaranch_Don Porter

국제 아마추어 야구소프트볼 연맹의 설립을 도모한 포터와 스미스. 스미스가 제 1대 회장을 맡고 포터가 부회장을 맡았으며,

제 91회 IOC 총회가열린 1986년 10월 13일, IOC가 1992년 올림픽 메달 종목으로 야구를 승인했다.

2018년 인터뷰에서 스미스는 “당시 포터는 굉장히 실망했었습니다.”라고 말했고,

“IOC 총회에서 라틴 국가들은 야구 종목 채택을 위해서는 노력했지만, 소프트볼은 고려하지 않아 매우 실망했었습니다.”라고 포터가 말했다.  

이에 사마란치는 포터에게 “다음은 당신 차례입니다.”라고 메시지를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 6월 13일,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제 97회 IOC 총회에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메달 종목으로 채택된 소프트볼.

Atlanta_1996_Softball

포터는 ISF 회장이 된 후 미국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자 IOC 위원인 Robert Helmick와 접촉했으며, 더 많은 여성 선수들의 참가를 원하는 IOC의 입장에 따라 Helmick는 여자 소프트볼 종목만을후보로 내세우도록 설득했다.

암 투병중에도 소프트볼의 올림픽 종목 채택을 위해 캠페인을 이어간 포터. 그는 29년 6개월 13일 동안 최소 1만 마일 이상을 여행했다.

소프트볼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메달 종목으로 데뷔한 후 2000년과 2004년, 2008년 올림픽에 이어 2020년 도쿄올림픽과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복귀를 앞두고 있으며,

Baseball and Softball Olympic History

성공 스토리

올림픽 종목 포함 이 후 모든 대회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소프트볼의 매 경기는 매진됐으며, 12만명 이상의 관중들이 올림픽 소프트볼을 지켜보았다.”고 전했다.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이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피 보고서에는 “소프트볼 종목이 두 번째 올림픽을 성공적이게 치르며 올림픽 구성원의 일원임을 증명했다.”,

“정확하고 속도감 있는 경기와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이 결합한 소프트볼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가장 흥미롭고 많은 관심을 받은 종목 중 하나였다.”라고 기록됐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에노 유키코가 퍼펙트 게임(올림픽 역사상 유일한 7이닝 퍼펙트 게임)을 시전해 역사에 남았고, 미국 언론은 ‘드림팀’이라고 불리우는 미국 대표팀 선수단의 압도적인 활약에 대해 앞다투어 보도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올림픽 팬들을 사로잡았던 우에노. 이틀 동안  413개의 공을 던져 일본의 올림픽 첫 번째 올림픽 소프트볼 금메달을 기록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동안 소프트볼 대회는 총 18만 명에 가까운 관중들을 동원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2020년 도쿄올림픽 복귀로 다섯 번째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 소프트볼 종목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아픔을 겪었던 후쿠시마에서 대회 초반 6개 경기를 진행해 주목받았고, 개최국 일본은 두 번째 올림픽 소프트볼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6년 이후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소프트볼은 참가한 모든 올림픽 대회에서 깨끗한 도핑 양성 검사 결과를 나타내는 등 우수한 성적을 이어가는 중이다.